Playfair's Commercial And Political Atlas - 그래프의 탄생

극동잡기단 글 백업(east.senza.co.kr).

솔직히 이 책이 재판되어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 분의 그래프가 유명한 건 오히려 Turfe 책에 나와있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얼마 전 Stacked Graphs - Geometry & Aesthetics 라는 글을 읽고 있는데, 주석에 Playfair's Commercial And Political Atlas And Statistical Breviary이 있는 게 아닌가? 순간 흠칫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좋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길래 이런 책을 볼 수 있는 걸까, 부럽다 싶었는데, 별 생각없이 아마존에서 뒤져보니 버젓이 판매중이 아닌가! 그것도 2005년에 나와서 oTL.

난 이걸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너무 흥분해서 혼자 난리 부르스를 췄다. 정말로...;

이 책은 내 생각엔 인류 지성사에 남을 100권의 책을 꼽는다면 반드시 들어가야할 책이다. 모 내 생각따윈 중요하지도 않고, Playfair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조차 아마 별로 없을 거라고 확신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

경제학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조차도 아담 스미스라는 사람은 들어봤을 거다. 이 분이 경제학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 분이 쓰신 국부론이라는 책은 말하자면 최초의 경제학 교과서였다.

그런데 국부론은 어렵다. 왠만큼 경제에 대해 공부했더라도, 아무 생각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좌절할 가능성이 크다.

하긴 말해놓고보니까 국부론만큼이나 다른 경제학 책들도 어렵긴하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 있다고 하자. 경제학을 하려면 수학이 필요한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왜냐면 경제학에서 다루는 여러 모델들이 수학이라는 필드 위에서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수요와 공급 모델을 이해하려면 좌표 개념을 이해해야한다. 더 나아가서 실제로 이러한 모델을 '다루는 기술'이 수학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수치도 없고, 대충 선 찍찍 긋는 게 별로 엄밀해보이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조작은 분명히 수학적이고, 바로 그런 특성을 이용해 이론을 엄밀하게 만들고, 그런 (제한적이고) 엄밀한 이론에 현실을 집어넣어 의미를 생성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경제학이 수학인 건 아니다. 오히려 수학적으로 소비자 잉여니, 생산자 잉여니, 초과 공금이니, 초과 수요니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결론만 놓고 보면 수학을 전혀 모른데도 심지어 모델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한데도 경제학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들을 그냥 받아들이지 못 할 것도 없다. 그럼 여기서 다시 한 번 물어야만 할 것 같다. 경제학을 하려면 수학이 필요한가.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국부론은 특히 어렵다. 아마 국부론을 읽어봤다면 그 이유에 대해서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부론엔 '그래프'가 없기 때문이다. 국부론은 현대에 와서 그래프를 그려놓고 하는 이야기들을 철저하게 구술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니까 어려울 수 밖에!

근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하는 그래프라는 개념이 아담 스미스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이 시점은 이미 르네 데카르트가 Cartesian 좌표축을 고안해낸 이후이긴 하다. Cartesian 좌표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좌표죽을 말한다.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Cartesian이라는 게 데카르트를 의미하는 형용사다. 여기에 대해선 추측이 가능하다. 아직까지 '경제학적 개념'을 좌표축이라는 수학의 필드에 올려놓는 발상이 개발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위에서 나는 경제학이란 수학적 필드에 현실을 집어넣어 의미를 생성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때까지는 그런 발상이 없었던 거다. 더 정확히 말함면 좌표축이라는 수학적 필드에 현실을 집어넣어 의미를 생성한다는 발상이 없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현대 경제학이란 좌표축 위에 현실을 올려놓는다.1

뒤집어 말하자면 이런 발상이 없었던 아담 스미스 시대에 경제학이란 적극적인 의미에서 수학이 아니었다는 거다.

수학과 의미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발상.

누가했을 거 같은가? 그게 바로 William Playfair다. 그는 그래프를 그렸다. 엄밀히 말하면 수학이라기보다는 통계학이다. 수학과 통계학은 다르다. 물론 통계학은 수학의 분과이긴 하다. 하지만 통계는 현실의 데이터를 다루는 매우 실용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데이터들은 통계학을 통해서 통계치가 된다. 어떤 학생들 100명의 수학 성적을 쫙 늘어놓는다고 해보자.

48 21 87 58 13 54 19 74 33 99 55 53 38 25 39 34 46 24 20 47 46 46 88 61 38 67 81 42 66 97 26 22 35 94 74 54 81 93 70 73 47 95 95 79 26 75 81 85 81 89 19 11 17 42 52 55 52 96 86 99 62 58 14 86 63 43 16 32 42 10 75 22 78 31 95 20 20 77 82 90 47 26 27 56 72 64 13 18 63 26 95 14 86 45 22 77 42 88 53 83

이건 데이터다. 이렇게 놓으면... 사실 뭐가 뭔지 알기 힘들다. 여기서 평균이라는 통계량(statistic)을 사용해보자. 몇 개 안 되는데 암산해보자. 음.... 음.... 음......... 54.56이 나온다. 어떤가?

흠. 사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어쨌다는 건지 따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평균이라는 게 뭔지 조금만 생각해보길 바란다. 평균은 그냥 평균일 뿐이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세심히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렇게 바라보면 평균이란 수많은 수치를 하나의 값으로 함축하는 어떤 일련의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계학에선 통계량(statistic)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위와 같이 표본에 대한 하나의 평균값 54.56이 생성된다.

여기서 하나의 평균값은 100개의 수치를 함축한다.

이런 걸 하는 게 통계학이다. 100개 정도가 아니다.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데이터도 통계학을 거치면 원하는 수준으로 줄여버릴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수학적으로 그것이 쓸만한 수치라는 걸 보증할 수도 있다. 통계학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신축성을 가진다. 통계학은 그 수치를 표현할 방법을 필요로했다. 수학이 통계학과 다른 점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좌표축은 통계적 데이터를 표현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거다. 좌표축에는 수학적 소재들, 혹은 함수가그려진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선 좌표축을 뛰어넘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래프가 탄생한다.

Commercial And Political Atlas And Statistical Breviary

제목을 해석하면 '상업 정치 도감 그리고 통계적 요약' 정도가 된다. 아,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건 두 권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1786년에 나온 Commercial And Political Atlas과 1801년에 나온 Statistical Breviary 책을 묶은 책이다. 어쨌거나 이 책에서 Palyfair는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표현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막대 그래프, 원 그래프, 꺾은선 그래프를 도입한다.

뒤집어 말하면, 이 때까지 그래프라는 건 없었다.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구체적인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도 국부론에는 그래프가 없는 거다!2

물론 경제 모델을 설명하는 그림들은 수학적인 그래프들이긴 하다. 근데 분명한 건 좌표축이라는 수학적 필드를 통계를 위한 공간으로 조작하면서 수학 밖의 무언가(위에서 사용한 표현이라면 '의미')를 좌표축에 옮겨담는다는 발상이 처음 등장했다.3 분명 통계 그래프가 그려지는 공간은 이전의 좌표축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건 아니다. 통계적 데이터를 더 표현하기 좋게 조작하는 것 뿐이다. 좌표축을 비틀어서 만든 통계적 필드에 현실을 올려놓는다. 이 발상이야 말로 넓게보면 경제학을 수학으로 만든 걸지도 모른다.

지금에 와서야 이런 그래프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된다. 뉴턴은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앉아 세계를 바라보고있다고. 우린 지금 누구의 어깨 위에서 살고있는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있는 걸까? 상황이 이런데 왜 윌리엄 플레이페어라는 이름은 잊혀진 버린 건지 정말 의아스럽다. 18세기 말에 와서야 이런 그래프들이 처음 등장했다는 건 상당히 충격적이지 않은가? 아니라고?

뭐 하긴 원시시대에는 자동차가 아직 없었다던데,

원시인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걸 상상하면 너무 끔찍하다. 아니라꼬? ㅋㅋㅋ


  1. 이 말이 정확한 건 아니다. 그래프가 그려질 수 있어야만 경제학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델을 단순화하기 위해서 통제하는 요소들이 많을 뿐이고, 그런 요소를 통제하지 않는다고 경제학이 성립되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연구들은 분명 좌표축 위에 그려지기 매우 어렵다. 

  2. 들은 얘기에 의하면 일본에서 山岡 洋一(야마오카 요이치?)가 번역한 국부론 책은 원래의 데이터를 그래프로 실었다고 한다. 

  3. 용감하게도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정말로 그래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게 플레이페어라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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